
뉴욕의 ‘핫 덕’에 대한 베를린의 조용한 대답
5월 1일, 베를린의 봄은 이미 여름처럼 빛나고 있었다.
하늘은 맑고, 티어가르텐의 나무들은 연둣빛 잎을 가득 펼치고 있었다. 사람들은 마치 오랫동안 기다렸던 햇살을 되찾은 듯 공원으로, 호수로, 카페로 모여들었다.
그날 나는 베를린을 방문한 독일 친구의 추천으로, 그 친구와 함께 스페인 대사관 부근에 있는 노이어 제(Neuer See)의 Café am Neuen See를 찾았다. 이름은 카페지만, 한국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말하자면 일종의 베를린 프리스타일 비어가르텐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독일식 비어가르텐과는 조금 다르다. 많은 외국인들, 그리고 한국인들 역시 “독일 비어가르텐”이라고 하면 뮌헨의 큰 맥주 천막, 축제 분위기, 커다란 맥주잔, 관광객으로 가득 찬 활기찬 장면을 먼저 떠올린다. 물론 그것도 독일 문화의 한 모습이다. 하지만 이곳은 훨씬 조용하고 자연스럽다. 상업적으로 연출된 축제 공간이라기보다, 숲과 호수와 사람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는 베를린식 휴식 공간에 가깝다.
도시 한복판인데도, 이곳에 들어서면 베를린의 소음은 갑자기 멀어진다. 오래된 나무들, 물가의 산책길, 햇빛을 받은 호수, 나무 그늘 아래 자연스럽게 놓인 테이블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비어가르텐이 자연을 밀어내고 들어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연 속으로 조용히 스며든 듯한 장소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뜻밖의 장면을 보았다.

원앙이었다.
한국 사람이라면 이 새를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원앙은 한국에서 오래전부터 부부의 화목, 사랑, 길상, 복을 상징하는 새로 여겨져 왔다. 혼례 때 쓰이던 원앙 목각 인형, 전통 자수 속의 원앙, “원앙처럼 살라”는 말 속에는 함께 살아가는 삶에 대한 소박하지만 깊은 바람이 담겨 있다.
그런 원앙이 서울의 고궁 연못도 아니고, 한국의 산속 계곡도 아니고, 일본이나 중국의 정원도 아닌, 베를린 티어가르텐의 호숫가에 서 있었다.
수컷 원앙은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주황빛 깃, 붉은 부리, 흰색과 검은색의 선명한 무늬, 보랏빛과 갈색이 섞인 가슴. 마치 누군가 붓으로 그린 동양화 속 새가 갑자기 숲속 흙길 위로 걸어 나온 것 같았다. 베를린의 봄 햇살 속에서 그 작은 새는 낯설면서도 이상하게 친근했다.
사실 원앙은 원래 동아시아에 사는 새다. 한국, 중국, 일본에서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고, 특히 한국에서는 상징성이 강하다. 그런데 유럽에서도 원앙은 완전히 낯선 새가 아니다. 관상용으로 들여온 원앙들이 자연으로 퍼져 나가면서 일부 도시 공원과 호수에 정착한 경우가 있다. 베를린과 포츠담 일대에도 오래전부터 원앙이 살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베를린에서는 이 아름다운 새가 큰 화제가 되지 않은 듯하다.
몇 년 전 뉴욕 센트럴파크에 원앙 한 마리가 나타났을 때는 달랐다. 사람들은 그 새를 보려고 몰려들었고, 사진가들과 언론이 따라붙었다. 뉴욕에서는 그 원앙이 하나의 도시 현상이 되었다. “핫 덕(Hot Duck)”이라는 별명까지 붙었고, 센트럴파크의 작은 스타가 되었다.
그런데 베를린에서는 이 새가 조용히 산다.
아마도 이것 역시 베를린다운 일인지 모른다.
이 도시는 때때로 놀라운 것들을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품고 있다.
그날 노이어 제 주변의 풍경은 원앙만큼이나 인상적이었다.
Café am Neuen See의 테이블은 오래된 나무 아래 놓여 있었고, 사람들은 맥주와 커피를 마시며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바닥은 번쩍이는 포장도로가 아니라 흙과 나무 그늘이 살아 있는 공간이었다. 도시 한복판인데도, 마치 시골 호숫가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었다.
카페 바로 앞에서는 보트를 탈 수 있었다.
연인들이 천천히 노를 저었고, 아이들은 물 위에서 웃었다. 가족들은 호수 위에서 시간을 보냈고, 산책객들은 물가에 앉아 햇살을 즐겼다.
그중 한 장면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한 아버지가 여러 아이들과 함께 작은 보트에 앉아 있었다. 손에는 맥주잔이 있었고, 잠시 그 잔을 바닥에 내려놓은 뒤 다시 노를 잡았다. 아이들은 아버지 곁에 모여 있었고, 햇빛은 물 위에서 반짝였다. 그 모습은 너무나 평화로웠다.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그림에 제목을 붙인다면 이렇게 부르고 싶었다.

“베를린의 완전한 지상 행복.”
조금 더 걸어가면 비어가르텐의 소음은 멀어지고, 사람들은 물가에 앉아 조용히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책을 읽고, 어떤 이들은 아무 말 없이 호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옆에서는 젊은 여성들이 쿠르드 전통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그들의 움직임은 자유로웠고, 주변 사람들은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누구도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
누구도 방해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그 순간을 살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다시 생각했다.
이것이 베를린이다.
베를린은 완벽하게 아름다운 도시는 아니다. 때로는 거칠고, 낡았고, 복잡하고, 차갑다. 그러나 이 도시에는 이상한 힘이 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는 힘. 숲속 비어가르텐에서 맥주를 마시는 가족, 호수 위에서 노를 젓는 아이들, 쿠르드 음악에 맞춰 춤추는 젊은이들, 그리고 동아시아에서 온 상징의 새 원앙까지.
모두가 같은 장면 안에 있었다.
한국인에게 원앙은 특별한 새다.
그래서 베를린에서 원앙을 만난다는 것은 단순히 보기 드문 새를 발견했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그것은 한국의 전통적인 상징이 베를린의 자유로운 일상과 만나는 순간이다. 한국의 혼례 문화와 독일의 공원 문화가, 동아시아의 길상 이미지와 유럽 도시의 봄 풍경이 아주 조용하게 한 장면 안에서 겹쳐지는 순간이다.
아마 많은 베를린 사람들은 그 새를 그냥 예쁜 오리라고 생각하고 지나쳤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인의 눈에는 조금 다르게 보인다.
그 작은 원앙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행복은 꼭 멀리 있지 않다고.
행운은 때로 아주 조용히 찾아온다고.
그리고 자유로운 도시는 낯선 존재도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게 해준다고.
베를린 티어가르텐의 노이어 제.
스페인 대사관 부근, Café am Neuen See 옆의 작은 숲길.
햇살, 물결, 보트, 아이들의 웃음, 나무 그늘, 쿠르드 음악, 그리고 한 마리 원앙.
그날 나는 베를린에서 한국의 상징을 보았다.
그리고 동시에, 베를린이라는 도시의 본질도 보았다.
자유. 자연. 가족. 낯선 것과 함께 살아가는 힘.
혹시 베를린에 사는 한국인이라면, 또는 베를린을 여행하는 한국인이라면, 어느 맑은 날 티어가르텐의 노이어 제를 걸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독일식 비어가르텐을 꼭 뮌헨식 맥주 축제로만 상상하지 않아도 좋다. 베를린에는 이런 방식의 비어가르텐도 있다. 숲속에 있고, 물가에 있고, 사람들의 일상 속에 조용히 섞여 있는 곳.
운이 좋다면, 물가 근처에서 원앙을 만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순간 당신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베를린이라는 도시는 가끔, 아주 작은 새 한 마리를 통해서도
우리에게 조용한 행운을 보여준다는 것을.
Aec-Berlin
